쥬라기 월드, 진화한 공룡과 인간 욕망의 폭주

 

쥬라기 월드 – 공룡이 아닌 인간이 문제였다

<쥬라기 월드>(감독: 콜린 트레보로우, 2015)는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<쥬라기 공원>으로 시작된 시리즈의 리부트이자, 공룡 테마파크가 ‘완벽하게 운영되는 시대’를 배경으로, **과학의 상업화와 통제 불능의 결과**를 생생하게 그려낸 블록버스터다. 이 영화는 90년대 특수효과의 한계를 넘어, 현대 CGI와 서사적 깊이를 결합해 **흥미와 공포, 윤리적 질문까지 동시에 던지는 작품**이다. 공룡이 되살아났다는 설정은 이제 ‘놀라움’이 아니라 ‘관리 대상’이 되었고,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**자연을 소비하는 인간의 교만과, 그에 대한 반작용**을 극적으로 보여준다. 서론에서는 <쥬라기 월드>가 어떻게 ‘더 크고, 더 강하고, 더 통제된 공룡’이라는 욕망이 결국 인간을 위협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구조로 확장되는지를 분석한다. 문제는 공룡이 아니다. 인간이다.

인도미누스 렉스 – 유전자 조작이 만든 괴물

쥬라기 월드는 더 이상 단순한 테마파크가 아니다.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유전자 편집을 통해 ‘더 크고, 더 똑똑하며, 더 위험한’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를 만들어낸다. 하지만 이 공룡은 인간의 계산을 초월해 진화하고, 계획된 구역을 탈출하며 통제를 벗어난 존재로 폭주한다. 인도미누스는 **자연과 기술의 비정상적 결합이 얼마나 빠르게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**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. 이 공룡은 포식자가 아니라, 인간이 만든 **‘실패한 신의 작품’**이다. 쥬라기 월드는 이 캐릭터를 통해 단지 동물 영화가 아니라, **과학, 자본, 도덕의 삼각 충돌을 경고하는 현대적 신화**로 기능한다. 결국 무너지는 건 철조망이 아니라, 인간이 스스로 믿은 통제의 환상이다.

블루와 랩터 부대 – 관계로 다시 묶이는 생명

영화 후반부, 공룡 조련사 오웬(크리스 프랫)이 키운 벨로시랩터 ‘블루’는 인도미누스 렉스와 대적하며 인간과 공룡의 새로운 연대를 보여준다. 이 장면은 단순한 액션의 전환점이 아니라, **인간과 생명체 사이에 진짜 ‘관계’가 가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제시**다. 블루는 조작되지 않은, 학습과 신뢰로 만들어진 생명이며, 이는 인도미누스와의 결정적 차이다. 이 대립은 결국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**통제가 아닌 이해, 착취가 아닌 상호작용**일 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. 쥬라기 월드는 블루를 통해 과학과 감성, 통제와 공존의 새로운 접점을 보여준다. 파괴만이 아닌 회복의 서사도 공존할 수 있음을 말이다.

특별 관점 – 내가 오웬이었다면, 블루와의 유대감을 끝까지 믿을 수 있었을까?

만약 내가 공룡 조련사 오웬이었다면, 유전자 조작된 괴물과 맞선 그 순간, 진짜 랩터 블루가 끝까지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을 수 있었을까? 수천 년 동안 인간과 공룡은 만난 적도 없고, 그 공룡이 갑자기 나를 알아보고 구해준다는 건 이성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. 하지만 블루는 감정과 기억으로 반응했고, **인간과 공룡이 만들어낸 진짜 관계**의 상징이었다.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, 무장한 병력도, 고속차량도, 벽도 없이, **단 하나의 믿음만으로 공룡 옆에 설 수 있었을까?** 쥬라기 월드는 묻는다. “네가 만든 생명체를 정말 ‘책임질’ 준비가 되어 있는가?” 그 물음 앞에, 나는 답할 수 있었을까? ‘네,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’라고.

다음 이전